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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룻기 1:1)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라는 구절은 룻기를 이해하는 매우 중요한 열쇠입니다. 룻기의 배경이 사사 시대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사 시대를 색으로 표현하면 어둠인데, 그 어둠은 보통 어둠이 아닌 칠흑같은 어둠 (pitch black)입니다. 사사 시대를 냄새로 표현한다면 피 비린내가 진동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사사기를 만져서 그 촉감을 느낄 수 있다면, 살을 에이는 듯한 까칠함 혹은 아찔함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사사기로부터는 들리는 소리가 있다면, 그것은 각 도처에서 울려 퍼지는 통곡 혹은 곡성일 것입니다. 굳이 사사기와 어울릴만한 배경 음악을 고른다면 바그너의 ‘지크프리트의 죽음과 장송 행진곡’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사 시대는 실패와 부패의 시대입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의 실패 (삿 1:1-3:6)로 시작해서 부패(삿 17:1-21:25)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가나안 정복 실패로 시작합니다. (삿 1:1-2:5)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처음에는 하나님께 묻고 (1:1), 하나님의 답변을 들은 후 (삿 1:2),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삿 1:4) 그 결과는 어떻습니까? 말씀대로 순종했을 때 그들은 승리의 삶을 구가했습니다 (삿 1: 5-7, 8, 9, 10, 11, 13, 17, 18 )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승리의 삶이 지속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머지않아 그들은 가나안 족속들의 철병 거를 무서워하기 시작했습니다: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 내지 못하였으며” (삿 1:19).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에 보이는 무기를 두려워한 결과 그들의 삶은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앞부분과는 달리 그들의 삶은 패배의 삶으로 점철되었습니다. (삿 1: 21, 25, 27, 28, 29, 30, 31, 32, 33) 결국,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나타나 언약 파기를 선포하자 이스라엘은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실패 했습니다. (삿 2:6-3:6) 가나안 정복을 실패한 그들은 가나안의 우상을 숭배 했습니다. 그 원인은 간단합니다. 여호와를 잊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가 살아있을 때에는 땅을 차지하고, 여호와께서 하신일을 본 사람들이 여호와를 섬겼지만(2:6-7),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는 여호와를 알지도 못하고, 그가 하신일도 알지 못했습니다. (삿 2:8-10) 그래서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그 목전에서 악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삿 2: 11-12) 그들은 가나안의 풍요로운 문화에 눈이 멀어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상 숭배의 결과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노략을 당하고, 괴로움이 더했습니다. (삿 2:14-15)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다른 신을 따랐습니다. (삿2:17)

그리고 사사기는 부패로 끝을 맺습니다. (17:1-21:25) 먼저, 사사기는 미가와 단 자손들의 종교적인 부패를 다룹니다. (17:1-18:31) 에브라임 사람 미가는 그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지만, 자격을 갖춘 제사장이 자기와 함께 있으면 더 많은 축복이 임한다고 잘못 생각하여 나중에 한 레위인을 고용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세의 율법을 거스르는 일이었습니다. (신 27:15) 그리고 18장에 등장하는 단 지파 사람들은 한 술 더 떴습니다. 이들은 마땅히 산당을 부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곳에 있는 우상과 제사장을 빼앗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는 곧바로 이스라엘의 윤리적인 부패로 눈을 돌립니다. (19:1-21: 25) 에브라임에서 온 한 레위인에게는 첩이 있었는데 그녀는 베들레헴에 있는 자신의 아버지 집으로 도망했습니다. 레위인은 자신의 첩을 데려오기 위해서 베들레헴에 가서, 다시 에브라임으로 오는 도중에 변을 당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그의 아내를 처참하게 죽였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행을 저지른 이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모이지만, 베냐민 지파 사람들은 이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나머지 지파와 베냐민 지파 간의 험오스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의 결과 베냐민 지파는 멸절 위기에 처하고, 이스라엘은 동족상잔의 비극 앞에서 또다시 울음바다가 됐습니다.

사사 시대는 어둠의 시대입니다. 사사기의 중심에는 사사들의 활약상을 다루는데 (3:7-16: 31), 구원의 빛은 매우 희미합니다. 중요한 것은 사사들의 무기력한 모습은 반복될 뿐만 아니라, 뒤로 갈수록 점점 악화(downward spiral) 된다는 것입니다. 사사 옷니엘, 에훗, 드보라 때에는 이스라엘이 부르짖자마자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시지만 (3:9, 15; 4:4), 기드온부터는 오히려 하나님께서 꾸짖었습니다. (삿 6:8-10) 그리고 입다에게는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더 큰 책망을 하셨습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삿 10:13-14) 더군다나, 삼손 때에는 아예 여호와를 부르짖지도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집중 조명함으로 사사기에 흐르는 암울하고도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사사기는 그 이유를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음으로 각자 자기 소견대로 행하였다”라고 합니다. (삿 21:25)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정하고 각자 자신의 소견대로 살았기 때문에 진정한 안식을 누리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 기드온은 자신이 인간 왕이 되기 소원했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백성들은 기드온을 구원자로 착각하여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그런데도 기드온은 백성들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지 않고 오히려 왕의 행세(playing king)를 했습니다. 그의 아들의 이름 또한 “아비멜렉”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으로 왕에 대한 욕망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베푸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은 여전히 암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룻기는 사사기의 암울하고 음산한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습니다. 룻기의 배경에는 사사 사사시대의 부패와 실패, 그리고 곡성이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들조차 무기력해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오늘 우리의 시대와 사사 시대는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여전히 사사 시대에 일어났던 실패와 부패의 모습, 그리고 무기력한 지도자들의 모습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희망적인 것은 룻기의 배경이 어둡고 음산하다고 내용까지 암울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룻기는 음산한 곡성을 희망의 노래로 바꿀 힘이 담겨 있습니다. 룻기는 아픔을 고칠 치유책입니다. 사사기라는 배경은 어둡고 잔인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무대에서 이방 여인 룻을 온 이스라엘의 구원의 빛으로 등장시키십니다. 이것이 현재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룻기에 주목해야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행복한 목사 김형중 드림 Copyright 2022 by Hyung Joong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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