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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과 파리


벌과 파리

김형중 목사 (어스틴 우리침례교회 담임)

따스한 볕이 드리웠습니다. 잔잔한 바람도 나무에 운율을 달아 살랑살랑 춤을 추었습니다. 겨울이라지만 베란다에 앉아 자연의 향연을 보고 듣기에 충분했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맘껏 들이마시면서 달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벌이 날아왔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봉침으로 아픈 다리를 치료한 경험 있는 터라 별 반응 없이 그냥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역시 벌은 꽃을 알아보는구나!" "내 몸에 꽃의 향기를 본능적으로 아는구나!" "기특한 것....” 내심 본인을 꽃으로 인식하는 그 벌의 몸짓과 소리가 대견했습니다. 심지어 그 벌의 날갯짓 소리가 하나님의 위로 메시지가 담긴 천사들의 합창으로 들렸습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습니다. 가만히 눈을 감고 그 소리를 즐기는데 벌과는 좀 다른 미묘한 차이가 감지됐습니다. 갑자기 그 생물체의 정체를 확인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향긋한 자연의 사색을 잠시 뒤로 하고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미확인 생물체를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벌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벌이 아닌 파리였습니다. 크기가 벌 만한 아주 큼직한 그리고 끔찍한 ‘똥파리’였습니다. “벌이 아닌 똥파리라니.” 비참했습니다. “그럼 내가 꽃이 아닌… 으읔….” 꽃에서 똥으로의 비참한 전락은 로맨틱한 사색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이처럼, 보는 것에 따라 인식, 존재, 그리고 가치가 달라집니다. 부정적인 면만을 보면, 부정적인 인식을 하고, 부정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부정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결국, 부정적인 존재들과 더불어 부정적인 공동체를 형성합니다. 반면에 긍정적인 면을 주로 보면, 긍정적인 인식을 하고 긍정적인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살아갑니다. 당연히 긍정적인 존재들과 긍정적인 공동체를 이룹니다.

이러한 현상은 신앙생활에서도 유사하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인식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주신 행복을 전하는 Peace-maker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만 바라보면,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만 인식하여 늘 두려움과 공포 속에 울며 홀로 살아갑니다. 이들은 Trouble-maker가 됩니다.

일상 속에서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인식, 존재, 그리고 가치관이 결정됩니다. 그리고 공동체에서의 정체성과 역할이 달라집니다. 무엇을 주로 보고, 어떤 시각에서 바라보십니까? 그리고 Peace-maker입니까? 혹은 Trouble-maker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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